경북 영주는 유교문화의 본향이자, 자연과 전통이 조화를 이루는 역사도시입니다. 신라시대부터 내려오는 부석사를 시작으로, 한국 최초의 사액서원 소수서원, 전통 한옥마을 무섬마을까지—고요한 풍경 속에 오랜 시간이 흐르는 곳들이 여행자를 맞이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영주에서 꼭 가봐야 할 대표 명소 3곳을 중심으로 자세히 소개합니다.
부석사에서 만나는 백제와 신라의 조화
경북 영주시 부석면에 자리한 부석사는 통일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단순한 불교 유적을 넘어선 한국 건축·예술·사상사의 살아 있는 교과서라 불립니다. 특히 고려시대 목조 건축의 정수라 불리는 무량수전(국보 제18호)과 아미타여래좌상(국보 제45호), 그 외 다수의 보물급 문화재가 곳곳에 남아 있어 국내외 불자와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명소입니다. 부석사의 창건 설화는 한국 불교문화에 있어 상징성이 큽니다. 신라 문무왕 16년, 의상대사가 당나라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이곳에 사찰을 지으려 했으나, 반대 세력과의 마찰이 있었고 그때 하늘에서 커다란 돌이 떠 내려와 이를 진압했다는 전설에서 '뜬돌사', 즉 ‘부석사’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무량수전 뒤편에는 ‘뜬돌’이 존재하며, 이는 아직도 사찰의 영험한 기운을 상징하는 중심 요소입니다. 사찰로 들어서는 길목에는 ‘부석사 일주문’을 시작으로, 부도탑과 범종각, 조사당, 무량수전 등 수많은 전각과 유물이 자연 지형과 어우러져 배치되어 있습니다. 특히 무량수전은 고려시대 목조건축 중 가장 오래된 건물로, 전통건축에서 가장 이상적인 비율과 구조를 가진 명작으로 평가받습니다. 한눈에 들어오는 지붕선의 유려함, 내부 단청 없는 목재의 단아함은 보는 이에게 감동을 줍니다. 무량수전 내부에 모셔진 아미타여래좌상은 국내 소조 불상 중 대표작으로, 자비롭고 부드러운 표정과 이상적인 신체 비율이 특징입니다. 이 불상 앞에서 많은 이들이 조용히 명상하거나 기도를 드리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며, 불교 신앙을 떠나도 그 조형미는 문화재적 가치로 충분히 감탄을 자아냅니다. 부석사 곳곳에는 의상대사의 흔적도 남아 있습니다. 의상대는 의상대사가 좌선했다는 장소로, 이곳에 올라서면 부석면 일대와 소백산 줄기가 시원하게 펼쳐져 사찰의 아름다운 입지와 자연경관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습니다. 특히 가을에는 단풍이 장관을 이루고, 해질녘의 황금빛 노을은 국내 최고의 뷰포인트 중 하나로 꼽힙니다. 사찰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있으며, 종교적 의미뿐 아니라 교육적·예술적 가치가 높아 학생 견학지로도 많이 선택됩니다. 입장료는 성인 기준 2,000원이며, 주차장에서 사찰까지 도보로 10분가량 오르면 도달할 수 있습니다. 입구 주변에는 지역 특산물 가게, 전통 찻집, 향토 음식점들이 있어 여행의 즐거움을 더해줍니다. 부석사는 ‘가볍게 둘러보는 사찰’이 아닌, 천천히 오르며 자연과 역사, 불교 철학을 함께 느낄 수 있는 ‘머무는 사찰’입니다. 경건함과 감성, 그리고 압도적인 풍경이 하나 되는 이곳은 영주를 대표하는 관광지가 아니라, 한국 정신문화의 정수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이자 유교 문화의 중심, 소수서원
소수서원은 한국 유교교육의 기원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소입니다. 경북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에 위치한 이 서원은 1543년, 풍기군수 주세붕이 고려 시대 유학자 안향을 기리기 위해 세운 백운동서원이 그 시초입니다. 이후 1550년, 조선 명종으로부터 ‘소수’라는 이름과 함께 공식적인 인가(사액)를 받으며 한국 최초의 사액서원이 되었습니다. 조선시대 전국 서원의 모델이 되었으며, 지금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자 사적 제55호로 등재되어 있습니다. 소수서원은 유교문화의 이념이 실질적으로 구현된 공간으로, 전체 배치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정문인 입교당을 중심으로 강당, 기숙사, 제향 공간인 문성공묘, 유생들을 위한 숙소형 전각, 장서각, 강수정 등 각 공간이 기능에 맞게 배치되어 있으며, 유교 이념인 겸손함과 절제를 반영한 구조가 특징입니다. 건물들은 화려한 장식보다는 단아함과 간결함을 통해 ‘선비 정신’을 체현하고 있습니다. 서원 내부에서는 안향뿐 아니라 주세붕, 퇴계 이황 등 유학의 중심 인물들이 남긴 유산을 살펴볼 수 있으며, 서원 주변의 자연 환경 또한 뛰어나 교육과 명상, 사색의 장소로도 적합합니다. 서원 옆을 흐르는 죽계천은 조선 선비들이 시를 읊던 장소로 유명하며, 인근에는 선비촌이 조성되어 있어 조선 시대 유생들의 삶을 직접 체험할 수 있습니다. 선비촌은 전통 한옥을 복원한 체험 마을로, 한복 입기, 활쏘기, 다도, 한지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 중입니다. 특히 초등~고등학생 체험학습 장소로도 인기이며, 가족 여행객에게도 의미 있는 시간을 제공합니다. 소수서원은 단순한 유적이 아니라 ‘정신 유산’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과거 조선의 인재들이 이곳에서 어떤 자세로 학문을 익히고 세상을 바라보았는지, 그리고 그 정신이 오늘날까지 어떻게 이어져오고 있는지를 눈과 마음으로 체험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입장료는 무료이며, 선비촌은 유료(성인 기준 3,000원)입니다. 주차장이 넓고, 안내판과 QR 오디오 해설이 잘 갖춰져 있어 혼자 여행하는 이에게도 불편함이 없습니다. 소수서원은 조용한 풍경 속에서 선비정신과 유교철학, 조선의 정신을 경험할 수 있는 ‘지적인 힐링 여행지’입니다. 한적한 여행을 원하면서도, 그 속에 깊이 있는 의미를 찾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합니다.
외나무다리와 고택이 있는 고즈넉한 무섬마을
무섬마을은 영주시 문수면 무섬길에 위치한 전통 한옥 마을로, 내성천이 마을을 휘감듯 흐르는 독특한 지형 속에 350년 이상의 역사와 삶이 고스란히 담긴 곳입니다. '무섬'이란 ‘신령스러운 두꺼비’라는 뜻을 가진 순우리말로, 마을이 물안개와 어우러져 비현실적인 풍경을 만들어내는 그 자체가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깁니다. 이 마을의 대표적 상징은 단연 외나무다리입니다. 나무 판자 하나만으로 이어진 다리는 폭 30cm, 길이 150m가 넘는 수공예 다리로, 과거 주민들이 내성천을 건너기 위해 이용하던 실사용 다리였습니다. 매년 열리는 ‘외나무다리축제’ 기간에는 전통 혼례 재현, 고택 체험, 선비 복장 걷기대회 등 다양한 행사가 진행되며, 다리를 실제로 건너보는 체험도 가능합니다. 물이 맑은 계절에는 다리 밑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큰 감동을 주는 포인트입니다. 마을에는 고택이 30채 이상 보존되어 있으며, 그중 만죽재고택, 김씨종가고택, 선성김씨고택 등은 국가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대부분 조선 후기 양반가옥으로, 대문채, 안채, 사랑채, 중정 등이 전형적인 구조를 따르고 있어 조선시대 가옥 구조를 직접 체험하고 관찰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합니다. 무섬마을은 단순한 ‘보는 마을’이 아니라 ‘머무는 마을’입니다. 일부 고택은 숙박 체험이 가능하며, 전통 다도, 탁본 체험, 떡메치기, 엿 만들기 등 오감 체험 프로그램도 다양하게 마련돼 있어 체류형 관광지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자연 풍경 또한 빼어나며, 새벽이면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가을엔 단풍이 마을을 물들입니다. 사진작가들 사이에서는 ‘영주의 아침’이라 불리는 유명 촬영 포인트로, 특히 새벽녘 외나무다리 위 풍경은 국내 최고 수준의 촬영지로 손꼽힙니다. 입장료는 없으며, 주차장도 무료입니다. 무섬마을은 기술과 속도 중심의 현대사회에서 ‘천천히 걷고, 오래 머무는 여행’의 가치를 되새기게 합니다. 복잡하지 않지만 깊이 있는 여정을 원한다면, 이곳이 바로 정답입니다.
경북 영주는 한국 전통문화의 원형이 살아 숨 쉬는 도시입니다. 천년 고찰 부석사에서의 고요한 시간, 소수서원에서의 학문적 사색, 무섬마을에서의 전통 체험까지—한 도시에서 세 가지의 완전히 다른 감성을 경험할 수 있는 여행지는 흔치 않습니다. 조용하지만 깊이 있는 여행을 원한다면, 영주는 최고의 선택이 될 것입니다. 자연과 전통, 역사와 여유가 어우러지는 이 도시에서, 하루 이상의 가치를 느껴보세요. 지금 떠나도, 다음 계절에 다시 가도 변함없이 반겨주는 곳이 바로 영주입니다.